🍃청단풍이 뿌리내릴 그 자리에서
아침부터 맑게 개었던 하늘은 활동이 끝날 무렵 구름을 잔뜩 품더니, 마치 “이제 고생 끝났지?” 하고 비라도 내릴 듯한 표정이었어요. 이날의 궁궐숲 가꾸기 활동은 창경궁 율곡로 권역 인접 KB Green Wave 궁궐숲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궐내각사 내사복시 구역의 복원공사로 일부 구역은 제외되었지만, 여느 때처럼 궁궐숲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올해 궁궐숲 봉사활동에서는 주로 진달래, 철쭉, 동백나무 등 관목 중심의 식재를 진행해왔는데요. 유난히 더위가 길었던 올여름, 폭염으로 인해 고사한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빈자리를 채워줄 새 친구들 — 청단풍, 진달래, 조팝나무, 그리고 보랏빛 열매가 아름다운 좀작살나무를 심었어요.
특히 청단풍을 심을 때는 ‘물죽쑤기’라 불리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나무를 세우고, 물을 듬뿍 부은 뒤 흙을 붓고, 다시 물을 붓고 흙을 개어주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죠. 흙을 찰지게 만들어 뿌리 주변의 공기층을 없애면, 뿌리와 흙이 밀착되어 수분이 잘 공급되고 가뭄에도 견딜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뿌리와 흙이 서로의 숨결을 나누는’ 순간이었어요.
구덩이를 깊게 파고, 물을 붓고, 흙을 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특히 어린이 참가자와 부모님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모두가 환상의 팀워크를 보여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물조리개로 물을 붓고, 어른들은 삽으로 흙을 고루 개며 리듬을 맞췄습니다. 함께하는 손끝마다 웃음이 묻어났고, 어느새 청단풍 한 그루, 두 그루가 제 자리를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첫 단풍을 심고 나니, 나머지 관목 식재는 거뜬했죠.
서울뿐 아니라 먼 지역에서 찾아오신 분들도 있었고, 처음 참여하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왕이 걷던 땅에 우리가 나무를 심고 있다니,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참가자분들의 말처럼 이날의 시간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고궁의 품 안에서 자연과 역사를 함께 느끼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후반에는 갑자기 날이 후덥지근해져 걱정도 됐지만, 모두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나무까지 심어주셨어요. 아마 이곳을 다시 찾을 때면, 오늘 심은 청단풍의 새순이 인사를 건네겠죠. 그날의 흙냄새와 웃음소리를 기억하며, 궁궐숲의 계절은 그렇게 한 걸음 더 깊어진 것 같아요.
다가오는 11월 7일, 올해 마지막 궁궐숲 가꾸기 활동이 열립니다. 겨울을 준비하는 숲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예요.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그 길 위에서, 우리가 심은 나무들이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세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여러분의 손끝이 궁궐숲에 또 하나의 온기를 더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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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궐숲 가꾸기 캠페인>은 도시에 있지만 법적으로 도시숲이 아닌 ’궁궐의 숲‘을 시민들과 함께 돌보고 가꾸는 캠페인입니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창경궁 율곡로 구역의 녹지공간을 시민들과 가꾸며, 끊어진 역사와 녹지축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KB국민은행(@kbkookminbank)과 유한킴벌리(@yk_woopoopoo)가 파트너로 함께하고 있습니다.